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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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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2019-12-12 16:06:20 글쓴이 김재진 조회수 106

    양철집의 추억 ◆

    우리 세대의 초등 시절엔 학년이 바뀌면 연례 행사처럼 새로 바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한차례의 조사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른바 학생 가정 환경 조사... 부모의 직업, 학력, 나이 등을 묻고 난 후 어떤 집에 사느냐 였다.


    양옥, 기와집, 양철집, 초가집 순이었는데 당시 우리 대보 지역사회에서 양옥은 물론 없었거니와 기와집도 한 반에 한 두 명이었고 대부분이 초가집으로 양철집 또한 그리 흔치는 않았었다. 다행히 내가 태어나서 자란 우리 집은 부유하진 않았으나 양철집이어서 자랑스럽게 손을 들었던 철부지 시절이 떠오른다.


    양철집은 소나기가 오면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으며 태양이 작렬하는 한여름엔 달궈진 천정으로 전해오는 찌는듯한 무더움을 감내해야 했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학창시절 방학을 맞아 포항의 친구들이 놀러 올 때에는 유독 초라한 우리 집이 부끄러워 숨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이웃의 초가집들은 하루가 다르게 스레트 지붕으로 교체되어 갔다.
    한국전쟁 후 미군들이 버리고 간 양철을 엉기 성기 이어서 녹슨 함석으로 만든 나지막한 양철집 . . . 
    거기서 나는 태어나서 자랐으며 학부를 졸업하고 내가 번 돈으로 새집을 짓기까지 물이 새면 그때 그때 빗물만 간신히 피할 정도로 덧씌워 가며 우리 가족들이 울고 웃고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 왔던 추억의 양철집이었다.
    이렇듯 추억이 서린 녹슬은 양철집을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이국땅에서 출 퇴근시 매일 차창밖으로 접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 
     
    1970년대 이후 발전이 멈춘 나라, 상위 5%가 90%의 부를 가진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나라,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늘 하루의 배부른 삶에 만족해 하며 살아가는 해맑은 미소를 띤 마닐라 빈민촌 양철집 속의 서민들...

    그들을 보며 한때 세계 최고의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후 극심한 정치적 이념 갈등과 분배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조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가난했지만 인정이 넘치고 행복했던 나의 어린 시절처럼 어쩌면 오늘의 그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김재진(28회)//
    • 김말선 2019-12-14 14:08댓글 삭제

      재진후배
      건강한 모습 보니 반갑네요.
      양철지붕
      저 초등학교 입학하기전
      우리집
      초가지붕 걷어내고 양철지붕으로 교체
      2~3년에 한번씩 새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교체해야만 했던 힘들었던
      일을 양철지붕은 녹쓸음을 방지하기 위해 2~3년에 한번씩 페인트칠만
      해 주면 끝이였던것을~
      페인트칠하는 일꾼 미끄러져 떨어질까봐
      목빼고 쳐다보며 아슬아슬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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